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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실제 인물을 알아보고 비교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분들의 이후의 삶을 조명하고 기억하도록 합시다. 보면서 많이 화가 나는 영화였는데 슬픈 역사였지만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괴물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을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1. 서울의 봄 실제 인물

 

 

 

1) 전두광(황정민 배우) 

실제 인물은 다 아시는 전두환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12.12. 군사 구데타의 주동 인물이며 12,13대 대통령을 역임했습니다.

 

 

 

 

 

 

 

 

 

 

 

2) 이태신 (정우성 배우)

 

우측이 장태완 장군님입니다. 

12.12.군사 반란 시기,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수도를 방위하였고 끝까지 군사 반란을 막고자 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군사 반란을 막지 못했고 직위를 잃고 고초를 겪습니다.

 

 

 

 

 

 

 

 

 

 

 

3) 노태건

이 분도 유명한 전 대통령으로 노태우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인물입니다. 군사 반란 주동인물 중 한 명이며 우리나라 대통령을 했습니다.

 

 

 

 

 

 

 

 

 

 

4) 정상호 (납치되는 육군참모총장)

 

당시 정승화 22대 육군참모총장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짧게 서술한 분들은 밑에 이후의 삶에서 자세히 적었습니다.)

 

 

 

 

 

 

 

 

 

 

 

 

5) 김준엽 현병감

 

김진기 헌병감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6) 공수혁 특수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7) 오진호 소령 (정해인 역)

 

김오랑 중령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실제로 정병주 소장을 지키려다 전사하게 되고, 반란군들에 의해서 사령부 뒷산에 암매장 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추후 중령으로 진급하고 이장도 됩니다. 아내분과 관련된 슬픈 일화도 있는데 2. 이후의 삶에 적겠습니다. 

 

 

 

 

 

 

 

 

 

 

 

 

 

 

 

 

 

2. 서울의 봄 실제인물 이후의 삶

 

 

전두광, 노태건 같은 인물은 이후의 삶을 대부분 알고 계실테니 생략합니다. 좋은 인물이라고 평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1)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먼저 군사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영화처럼 엄청나게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실패를 하게 됩니다. 

 

 

가족들과 관련된 슬픈 일이 많은데 먼저 아버지께서 장태완 장군이 잡혀간 일을 듣고 술로 끼니를 대체하고 식사를 전폐하였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1980년 과음으로 별세하십니다.

 

그 뒤, 1982년 학교 도서관을 간다는 서울대학교 자연대 수석이었던 아들이 실종됩니다. 1달 후 경북 칠곡군 왜관읍 근처에 있는 산기슭에서 의문사한 채로 발견됩니다.

 

당시 겨울이었는지 시실이 꽁꽁 얼어서 눈,코,입 등 얼음이 차 있었다고 합니다. 차마 그 시신을 아내에게 보이기 힘들고 안타까운 마음에 입김과 자신의 혀로 녹였다고 하는데 너무나 슬픈 일화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죽은 후 생각나면 묘소로 달려가서 잠든 일이 많았다고 하십니다. 의문사지만 의심하게 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장태완을 회유하기 위해서인지 공기업인 한국증권전산 사장을 임명하였고 장태완 장군은 수락했습니다. 이를 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외동아들이 죽고 딸만이라도 살리고자 일했다는 것과 끝까지 전두환을 비판하고 고소까지 한 것을 본다면 이것을 굴복한 것이라고 볼 순 없고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에도 당선되었고 김영삼 정권에서 전두환, 노태우 소송 증인으로 법정에도 참석합니다. 16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으며 2010년 향년 78세로 별세하십니다. 그의 장례식에 하나회 인물은 장세동, 이종구 이외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봐도 얼마나 올바른 삶을 사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슬픈 일화는 여기서 끝나면 좋지만 돌아가시고 아내분께서도 2년 뒤,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을 하십니다. 장태완 장군과 금슬이 좋으셨는데 돌아가시고 두문불출하시고 우울증을 앓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영화 주요 인물이고 훌륭한 분이셔서 길게 정리했습니다.

 

 

 

 

 

 

 

2) 정병주 전 특수전사령관

 

 

 

 

 

군사반란 당시에 끝까지 저항한 장군 중 1명입니다. 이 분을 지키던 김오랑 중령은 사망하게 됩니다. 12.12반란 사태에서도 수도권 공수여단이 거의 다 배신한 상황에서 9공수를 출동시키는 등 뛰어난 면모를 보입니다.  하지만 3공수여단에 의해 총상을 입고 체포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좋은 작전이었던 9공수마저 하나회의 작전(신사협정)으로 물러나고 영화와 같이 뒷통수를 맞으면서 반란은 성공하게 됩니다.(당시 육본 장군들은 정말 멍청한 짓을 했다.) 반란이 끝난 후, 강제 예편 당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자료를 수집하고 1212사태 부당성을 주장했습니다. 신군부는 회유도 했지만 끝까지 회유당하지 않았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김진기 장군과 함께 폭로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 때문인지 1988년 10월 16일 밤 10시 따라나오던 여동생을 만류하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후 실종 139일 만인 3월 4일에 송추 인근 야산에서 목매달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시계는 10월 19일에 멈춰있었다고 합니다.의심스럽기 그지 없는 죽음입니다.)

 

정병주 소장은 가톨릭 신자였고 보증은 섰지만 다른 부동산도 있었고 자살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3) 김오랑 소령, 부인

 

 

 

 

 

김오랑 소령은 오늘 저녁도 못 들어갈 것 같아. 미안해 라는 말을 아내에게 남기고 그 날 전사 하십니다. 끝까지 위 정병주 특수작전사령관을 지키지만 평소 친분이 깊던 박종규 중령의 사령관실 공격 명령으로 교전 중 6발의 흉탄을 맞고 전사하십니다. 

 

시신은 당시 뒷산에 암매장되었지만 동료 장교들의 항의로 1980년 국립서울 현충원으로 이장됩니다. 

 

김오랑 소령의 부친께서도 슬픈 죽음을 들으시고 홧병으로 돌아가십니다. 김오랑 부인 백영옥 여사님께서는 시력약화증을 앓고 있었는데 이 충격으로 완전히 실명하게 되십니다. 특히 친밀했던 박종규 중령이 했던 짓이라 더 충격이 컸을 것입니다. 

 

박종규에게 진상을 알고 따지자 명령이었을 뿐이라고 박종규는 변명했다고 합니다. 이후 군인 아파트에서 쫓겨난 이후 고향 부산에서 복지시설 전화 상담 봉사활동을 하며 지냈습니다. 1990년 전두환, 노태우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보류됩니다. (의심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후, 소송 논란이 끝나고 1991년 자신이 운영하던 부산 자비원 마당에서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당시 실족사로 끝났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떨어진 난간 높이는 고작 사람 허리 정도로 거기서 죽기 힘드며 경찰에서 초기에 자살이라고 했는데 며칠 후에 독일에서 눈수술을 받기로 한 사람이 자살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발하자 실족사로 수정)

 

 

 

 

 

 

 

 

4) 박종규 중령

 

김오랑 소령을 죽인 인물로 영화와 같이 김오랑 소령과는 가족과도 친밀한 사이였지만 자신의 명령으로 김오랑 소령을 죽인 인물입니다. 민주화 이후, 반란군이 되면서 국민연금 박탈, 예비군 소장 예우 소멸 등으로 가난한 삶을 살다가 죽게 됩니다. 죽기 전에 김오랑 기념사업회에 전화를 걸어서 약간의 죄책감은 있었는지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반란군 중에 제대로 처벌 받거나 한 사람이 없는데 그나마 벌을 받은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5)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영화에서 잡혀서 고문 당해서 바로 죽은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후에 살아남았습니다. 

 

군사 반란 이후 강제 해임, 예편 당해 이등병으로 강등당했습니다. 모진 고문 후 석방되었습니다. 1988년 1212군사반란 피해자,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하여 증언합니다. 

 

1993년 장태완, 김진기, 하소곤 등과 1212군사반란자들을 검찰에 고발하나 당시 검찰은 성공한 반란은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기소유예합니다..ㅎㅎ

 

1999년 반란 피해자 출신 예비역들의 권익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2002년 향년 73세로 사망합니다. 

 

 

 

 

 

 

 

 

 

 

 

6) 노재현 국방부 장관

 

 

영화에 나오는 국방부 장관 모티브가 된 인물입니다. 1212반란 당시 영화처럼 가족들과 함께 공관에서 단국대로 도망을 칩니다. 한미연합군사령부에 있다가 이후 국방부로 이동했다가 반란군에게 붙잡힙니다.

 

안전한 연합사령부에서 국방부를 온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 사태 이후 제대로 된 명령을 하지 않아서 군사 반란을 진압하지 못하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또한 육본 벙커를 지켰으면 되는데 그것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에게 무장해제와 투항하라는 것과 다름 없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1212 반란 이후, 사임했지만 이후 공적? 때문인지 한국종합화확공업 사장, 한국화학연구원 이사장, 한국비료공업협회장 등을 지냈고 호의호식하다가 2019년 죽습니다. 시신은 현충원?에 있다고 합니다..

 

 

 

 

 

 

 

 

 

 

 

 

 

7) 김진기 국방부 조사대장 (영화 헌병감)

 

 

끝까지 반란군과 싸우다 실패하고 자진 예편합니다. 이후 수원에서 농사를 짓다가 보문도에서 광어 양식업 등을 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이후 군인으로 전문성을 살려 영국전략문제연구소, 일본평화안전보장연구소 등에서 활동합니다.

 

87년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신군부 만행을 폭로하였습니다. 노태우 정부에서 회유하지만 모두 거절합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한국토지공사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1993년 신군부 등을 내란죄로 고발합니다. 

 

2006년 돌아가시고 현충원에 안장됩니다. 끝까지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슬픈 역사이지만 기억하고 나쁜 짓을 한 자들도 잊지 말아야 하고 훌륭한 분들이 너무나 슬픈 일을 겪으셨지만 기억하고 다시는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런 훌륭한 분들을 기리고 기억해야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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